논문 ‘패스트트랙’ 초청장의 덫

논문 ‘패스트트랙’ 초청장의 덫

Bởi john car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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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0 | 23:17] 인박스에 날아든 VIP 메일

데이터 정제 스크립트를 돌리며 졸린 눈을 비비던 참이었습니다. “국제 저널 Environmental Systems Advances 신규 VIP 저자 초청(FAST-TRACK)”이라는 제목의 메일이 하나 떠 있더군요. 이미 투고 대기 중인 원고가 있었기에 혹했습니다. 메일 본문은 달콤했습니다. “심사 기간 3주 보장, 게재료 70 % 감면, 대학원생 특별 프로모션.” 초조함이 단숨에 줄어드는 기분이었죠.

[Day 1 | 08:45] 홈페이지 첫인상, ‘거의’ 진짜

링크를 클릭하자 저널 로고가 선명한 랜딩 페이지가 열렸습니다. 최근호 표지, 임팩트 팩터, 편집위원 얼굴까지 그럴싸했지만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소가 journal-esa-submit.org였습니다. 정식 사이트 도메인은 journal-esa.com인 걸 알고 있었기에 ‘submit’이라는 하위 도메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중간에 삽입된 ‘-’ 기호가 낯설었습니다.

[Day 1 | 09:02] APK 파일? 정말?

제안을 수락하려면 ‘전용 투고 매니저’를 설치하라는 안내가 떴습니다. 윈도·맥 버전 링크 옆에 안드로이드 APK 링크가 같이 있더군요. 데스크톱 논문 시스템이 모바일 앱과 동시에 배포되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의아했지만 ‘새 플랫폼인가’ 싶어 Mac용 .dmg를 내려받았습니다. 그런데 다운로드 속도가 30 kB/s로 터무니없이 느렸습니다.

[Day 1 | 09:25] 코드 서명 없는 설치 패키지

열어 보니 개발자 서명이 “확인되지 않은 개발자”로 표시됐습니다. 정식 출판사라면 최소한 코드 서명을 할 텐데요. 설치를 취소하고 패키지를 ZIP으로 열자 내부 파일이 고작 5개, 그중 실행 파일 크기는 1.2 MB뿐이었습니다. 논문 투고 시스템이라면 라이브러리 용량만 수십 MB는 될 텐데 말이죠. 불길함이 확 커졌습니다.

[Day 1 | 10:10] ‘편집장’에게 직접 메일

확인 차원에서 공식 사이트에 명시된 편집장 이메일로 “FAST-TRACK 초청이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놀랍게도 15분 만에 답장이 왔지만, 내용이 더 수상했습니다. “VIP 프로모션이 맞다”면서도 “직통 계좌로 게재료를 선납하면 추가 10 % 할인”이라고 했습니다. 첨부된 인보이스에는 달러 결제 은행이 아닌 동남아 현지 은행 코드가 찍혀 있었고, 수취인은 개인 이름이었습니다. 이쯤 되니 거의 확신이 들었습니다.

[Day 1 | 11:30] 먹튀위크에서 본 익숙한 서명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먹튀위크에 편집장 서명 이미지와 인보이스 번호를 검색했습니다. 일주일 전 “가짜 저널 패스트트랙” 신고 글이 떠 있더군요. 서명 필체가 제 메일과 100 % 일치했고, 인보이스 번호 규칙까지 동일했습니다. 덕분에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Day 1 | 12:05] 퇴로 확보

바로 설치 파일을 휴지통에 버리고 브라우저 캐시·쿠키를 모두 지웠습니다. 혹시 모를 USB·네트워크 접근 권한을 확인했고, 교수님께도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임팩트 팩터도 훔쳐 올 정도면 고전적 피싱이니 조심하라”는 답을 들었죠.

[Day 1 | 14:20] 플랫폼·메일 서비스 동시 신고

가짜 도메인을 등록한 레지스트라에 피싱 신고를 넣고, 우리 학교 정보보안 팀에도 메일 헤더를 전달했습니다. 사흘 뒤 해당 도메인은 접속 차단, 메일 서버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안내를 받았고요.

이번 사건이 남긴 짧은 체크리스트

  • 공식 도메인 뒤에 낯선 하위 문자열이 붙으면 WHOIS 부터 보자.
  • 설치 프로그램이 코드 서명-無? → 즉시 삭제.
  • 외주 은행개인 계좌 선납 요구 = 90 % 이상 피싱.
  • 먹튀위크 검색 1분이 게재료 1000달러를 지킨다.

결국 제 논문은 평범한 일반 투고 절차로 들어갔고, 리뷰어 코멘트와 씨름하는 중입니다. 그래도 통장은 안전합니다. ‘패스트’보다 ‘퍼스트’—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편이 훨씬 빠르다는 평범한 교훈을 다시 새겼습니다.